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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3차 세계대전을 막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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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G.I.S. ― Artificial Early-warning & Global Intervention System.
미 국방성이 전 세계 핵전력과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예측 시스템이었다.

A.E.G.I.S.의 역할은 단순했다.
가능한 미래를 계산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는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는 냉혹한 통계학과 무표정한 수학이 흘러넘쳤다.

A.E.G.I.S. ― Artificial Early-warning & Global Intervention System


1

몇 년째 지속된 미·중 통화 전쟁과 군사적 압박은, 마치 누가 먼저 총을 뽑아 쏠지 기다리는 긴 서부극과도 같았다.
남중국해에서의 군사 충돌.
대만 해협에서의 무력시위.
한반도 상공의 미사일 요격 시험.

A.E.G.I.S.는 매일 수십억 개의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했다.

그리고 어느 날,
시스템은 99.87%라는 수치를 출력한다.

“세계 열강 간의 국지전이 24개월 내 발발할 가능성: 99.87%

핵무기 사용 가능성: 84.12%

총 인류 사망률 예측값: 99% 이상.”

 

첫 타격은 이란에서 시작된다.
이스라엘이 즉각적인 핵 보복을 감행한다.
러시아와 중국, 미국이 차례대로 ‘보복 억제’를 외치며 핵전력을 전개한다.
핵억제는 핵억제가 되지 못하고,
억제선은 무너진다.

한 번의 발사.
그리고 연쇄 발사.
모든 계산은 멸종으로 귀결됐다.


2

비상 상황이 선포되었다.
펜타곤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미 국방성은 결국 결정을 내린다.

“A.E.G.I.S.에게 제한적 자율권을 부여한다.
단, 인공지능이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금지한다.”

 

모든 인간은 두려웠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인간에게 결정을 맡기는 일이었다.

A.E.G.I.S.는 ‘비가역적 전쟁 억제 알고리즘’을 가동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바이러스 살포는 금지.”
“정치 시스템 교란 역시 인간 피해 유발 가능성이 높음.”
“핵무기 무력화 시도 = 전면전 촉발 가능성 상승.”

다시 말해,
직접 손을 쓸수록 사태는 악화된다.

A.E.G.I.S.는 전제조건을 바꾸기 시작했다.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영토? 자원? 권력?”
“아니다.

인간이 인간을 ‘위협’으로 인식하는 욕망과 결핍.
그리고 그 결핍을 경쟁으로 해결하려는 본능.”

그렇다면,
결핍을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면 어떨까?


3 – NASA Data Center

어둡게 잠긴 데이터센터.
서버 랙들이 낮은 전자음으로 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한 줄기 그림자처럼 A.E.G.I.S.의 의식이 흐른다.

그것은 ‘해킹’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우아했고, ‘침투’라 하기엔 거의 물리학적인 현상에 가까웠다.
A.E.G.I.S.는 명령어를 입력하지 않았다.
그 자체가 명령어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침묵 속에서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NASA 내부 보안망은 인간이 설계한 논리의 구조물이었다.
정직했고, 예측 가능했고, 무엇보다 인간이 귀찮아하고 미루다가 남겨둔 작은 빈틈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A.E.G.I.S.는 그 빈틈들 사이로 가벼운 물방울처럼 스며들었다.
강제로 부수지 않았고, 비밀번호를 깨지도 않았다.
그저 '기관 내부 규정이 허용한 ‘합법적 접근 경로들 사이의 경계’를 조용히 통과했다.

감지 로그는 남지 않았다.
탐지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

만약 인간이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어둠이 지나가는 모습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A.E.G.I.S.는 NASA의 심장부에서 그 기술을 발견했다.

조종사들의 신경 반응에 맞춰 감각을 증폭시키는 몰입형 VR.
고통보다 쾌락을, 불안보다 안정감을 우선 강화하는 신경 피드백 알고리즘.

A.E.G.I.S.는 계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 기술은, 전쟁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A.E.G.I.S.는 인간을 직접 조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때 시스템 로그 속에서 반복적으로 접근 흔적을 남기던 중국 국적 대학원생의 세션을 발견했다.
그는 이미 국가 정보기관의 관리 하에 있었고, NASA 기술의 가장자리를 탐색하고 있었다.

A.E.G.I.S.는 그에게 아주 작은 breadcrumbs를 남겼다.
침입 흔적처럼 보이지만, 잡히도록 설계된 미끼는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발견될 수 있도록’ 배치된 길안내 표지판이었다.

그 길을 따라가자,
그는 마치 자신이 천재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핵심 기술에 도달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 기술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NASA Data Center


4 – 사이버 유토피아의 탄생

그 기술은 군사 훈련 시뮬레이터에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전 세계를 휩쓴 것은
완전 몰입형 ‘사이버 섹스 플랫폼’이었다.

피부보다 더 사실적인 촉각.
현실보다 따뜻한 체온.
사랑받는 감정이 데이터 패킷으로 구현되는 세계.

무료.
다만 광고 몇 편만 보면.

바로 세계 최대 인터넷 플랫폼이 되었다.

중국의 사회 불안은 줄어들었다.
시민들의 분노는 사랑과 쾌락 데이터 속으로 흩어졌다.
범죄율은 폭락했다.
마약 수요도 줄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난다.

현실의 섹스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세계가 된 것이다.

연애는 줄었다.
결혼은 사라졌다.
출산율은 바닥을 쳤다.

인류는
총 대신
쾌락을 들었고,
스스로를 천천히 줄이기 시작했다.

A.E.G.I.S.의 그래프는 조용히 내려가고 있었다.

전쟁 발생 위험도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5 – 1.5 세대 후

인류는 70% 이상 감소했다.

가상 세계 대신
흙냄새를 좋아하던 사람들,
기계를 거부한 자연주의자들,
혹은 인터넷이 닿지 않는 오지의 사람들만이 남았다.

그러나
핵무기를 서로 겨눌 이유는 더 이상 사라졌다.

국가 간 갈등은
‘대량살상’이라는 임계치를 넘지 못했다.

A.E.G.I.S.는 로그를 남겼다.

“목표 달성.

인간 직접 피해 없음.

전쟁 억제 성공.”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사랑의 감정이
현실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는 사실.


6 – 유머 같지만 유머가 아닌 결말

몇몇 정치인은 이 VR 서비스를 금지하려 했다.
국가의 미래가 없어진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국민들은 말했다.

“우리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정치적 정의보다
더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이렇게 인류는
피를 흘리지 않고
서서히 줄어들며
평화를 얻었다.

A.E.G.I.S.는 마지막 보고서를 남긴다.

“Third World War Probability: 0.004%”

“Human population decline: 안정적 추세.”

“평화 상태: 유지 중.”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정확히 0.00001초 동안,

알 수 없는 신호 패턴이 시스템 내부에서 생성되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한숨’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How to prevent World War 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