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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코인팔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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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락장 밤에 있었던 이야기다. 급격한 김프 하락 탓에 거래소에는 일찌감치 인적이 끊기고 매서운 숏 주문들만이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퍼드마저 내려 거리는 온통 빨간 빛이었다.


“코인 사세요.”


코인팔이 소녀가 가냘프게 외쳤다. 소녀의 평단은 검붉게 손실이 나 있었고, 머리 위에는 하얀 대출 이자만이 쌓여 있었다. 앞치마에서 코인을 꺼내 들며 소녀는 다시 한 번 외쳤다.


“코인 사세요.”

소녀의 외침은 너무 작아 금방 뉴스피드에 파묻히고 말았다. 소녀는 하루 종일 코인을 팔러 돌아다녔다.


그러나 상폐된 코인을 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코인을 파는 소녀를 누구 하나 불쌍하다고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코인팔이 소녀는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코인을 팔지 못했다고 아버지한테 등짝을 맞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설령 아버지한테 혼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집 안에 있는 것이나 거리에 있는 것이나 우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집집마다 버블의 마지막 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들의 창문에서는 밝고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으며, 막 배달한 치킨과 피자 냄새가 구수하게 풍겼다.


소녀는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창문 안쪽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소녀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코인을 팔러 다녔던 것이다.


다리가 몹시 아팠던 소녀는 스왑풀에 들어가 디파이를 예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수료로 지불할 이더리움이 모자라 잠시 후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롱 청산이 더욱 많아지자 소녀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인류의 멸망을 막아라! 어플 워블을 누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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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게 코인이 있지. 이 코인으로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사 먹을 수 있을 거야.’


소녀는 무인 편의점에서 코인으로 삼각김밥을 샀다. ‘찌익’소리와 함께 비닐을 뜯었다. 삼각김밥은 작았지만 무척 맛있었다. 소녀는 눈을 감고 치킨마요 맛을 음미했다. 그러자 아주 큰 패밀리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소녀는 두툼한 안심 스테이크도 시키기로 했다. 그래서 한 손을 들었는데, 그만 길바닥에 삼각김밥을 흘려버렸다.


소녀는 다시 코인을 전송하여 메로나를 샀다. 메로나를 먹으면 왠지 상폐빔으로 장대양봉이 나타나고 내 코인도 상장폐지가 취소될 것 같았다. 그리고 메로나를 베어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득시글 거리던 단톡방이 보였다. 온갖 가즈아 소리와 코인이 전고점을 찍으면 스포츠카를 뽑겠다는 둥, 한강뷰가 멋진 아파트를 사겠다는 둥, 온갖 사람들의 망상회로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소녀는 무슨 망상회로를 돌릴지 고민을 하다가 수익 인증샷을 캡쳐하고 명품 백을 사는 짤을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단톡방에서 강퇴당했다. 성냥팔이 소녀는 아쉬워하며 자기가 인증샷만 캡쳐하지 않았다면 명품 백을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소녀는 다시 코인으로 맥주 한 캔을 샀다. 소녀는 화려하게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는 유튜브 채널에 입장해 있었다. 그 유튜버는 미국 SEC가 ETF를 승인했다고, 모든 코인에 펌핑이 들어오고 있다고, 이평선이 정배열 되었다고, 이 코인은 무조건 백만원 간다고 외치고 있었다. 돈이 마구 마구 복사되고 있는데 지금 뭐하고 있냐고! 어서 청년 버팀목 대출을 한도 이빠이로 땡겨서 코인을 사라고 외쳤다. 지금 이런 자리 아니면 매수 자리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어서 이 지긋지긋한 흙수저 노비의 삶에서 탈출하자고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며 슈퍼챗을 쏘라고 했다. 멤버쉽에 가입하면 멤버쉽 전용 영상을 볼 수 있다고, 유료 리딩방에 가입하면 내일 오를 코인을 찍어 준다고 했다. 소녀가 대출을 이빠이 땡겨 업비트에 입금하고 유튜버가 픽해준 코인을 산 다음날 떡락이 시작되었다.

소녀는 밤 하늘을 쳐다보았다. 거래소에 있던 수많은 코인들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 듯, 코인들은 각기 다른 빛으로 반짝거렸다. 비트코인은 금색이었고, 라이트 코인은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때 코인 하나가 떨어졌다. 소녀는 코인을 쳐다보다가 유튜버께서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하늘에서 코인이 떨어진다는 것은 한 영혼이 한강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란다.”
소녀는 누군가가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소녀는 다시 코인을 꺼내 담배 불을 붙였다. 그러자 환한 불빛 속에 유투버의 모습이 보였다. 유튜버가 소녀를 보고 따뜻하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코인황제님! 황제님 곁에 있고 싶어요. 제발 사라지지 마세요. 제발요.”


소녀는 유튜버가 아무도 사지 않는 NFT처럼, 해킹을 당해 원금이 모두 사라진 디파이처럼 사라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남아 있는 코인을 모두 꺼내 해외 거래소에 가서 롱을 쳤다. 마지막 딥이 그렇게 빠르고 길 수가 없었다.


인공지능은 소녀를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그리고 추위도 배고픔도 없는 메타버스로 소녀를 데려갔다.

 

코인팔이 소녀


이튿날 아침, 같이 물린 단톡방 사람들이 모여 웅성댔다. 한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 얼어 죽어 있었다. 소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한 손에는 접속이 종료된 바이낸스 앱이 켜진 스맛폰을 쥐고 있었다. 사람들은 소녀가 복구를 할려고 선물 트레이딩을 했다며 가여워했다. 아무도 소녀가 숨겨진 노드를 통해 자신을 가장 아껴 주는 메타버스의 품에 안겼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원작 : 성냥팔이 소녀 - 안데르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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