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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가치투자

김차장의 운수 좋은 날

토요일 늦은 오전, 김차장은 힘겹게 잠에서 깨 위에 좋다는 요구르트 한병을 털어넣었다. 거실 탁자위엔 어제 밤에 먹었던 라면 냄비와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속이 쓰려와 헛개수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소파에 털썩 앉으니 현관 입구와 거실에 널부려져 있는 이삿짐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만사가 귀찮아져 캔맥주를 하나 마시고 소파에 널부러져 베개를 덮고 다시 눈을 감았다.

김차장은 최근 별로 운수가 좋지 않았다. 십년간의 결혼 생활이 얼마전 파탄이 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김차장도 그동안 가정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중견기업 부장이 되기 위해 회사에 몸바쳐 충성하고 매일 야근과 휴일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맥 관리를 위해 회사내 회식과 지인들 술자리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참석했다. 임원진들에게도 충성스런 부하로 잘보여야 하고, 업계 인맥도 잘 관리해 좋은 직장으로 이직의 기회도 노려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경기도 외곽의 24평 아파트 하나가 전 재산이었지만 대부분 은행꺼였고, 주식으로 재테크한다고 열심히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거의 다 날려 먹었다. 증권회사 출신 과장 한 놈이 재무팀에 입사해 그 놈이 매일 픽해주시는 각종 테마주, 바이오주, 대선주까지 투자했지만, 매일 물리기 일쑤였고 손절만 거듭했기 때문이었다. 그 과장놈에게 좋은 종목 픽해달라고 사준 삼겹살에 소주만 100만원은 넘었을것 같다. 회사내에서 매일 담배피며 주식 이야기하던 과차장들과 패거리들 중에서 주식으로 돈 딴 놈은 아마 한놈도 없는것 같다.

가정에도 소홀하고, 벌이도 시원찮고, 재테크도 염병인 김차장에게 질린 와이프는 바람을 폈다. 왠 젊은 놈하고 데이팅 앱에서 만나 눈이 맞은거였다. 거듭되는 유산으로 자식도 포기한 이 부부는 쿨하게 합의 이혼을 했다. 재산을 분할하기 위해 살던 아파트를 팔고 직장 근처 오피스텔로 들어온 것이 며칠전이었다.

오후 느지막히 일어나 컵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트림을 거하게 하고난 김차장은 자주 하는 MMORPG 게임을 하기 위해 PC를 켰다. 게임 접속 전 네이버 뉴스를 보다가 "비트코인 8천만원 재돌파!"라는 헤드라인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주식에 빠져 살때는 코인충들을 동료들과 그렇게 씹어대고 놀려댔는데... 

한 동안 김차장은 게임에 빠져 토요일 오후를 때우고 있었다. 그러다 예전에 문득 자기도 코인을 샀었던 기억이 났다. 김차장이 아직 과장이었던 2017년 연말이던가 컴퓨터공학을 부전공으로 해서 나름 IT쪽에 밝았던 박대리가 점심 시간에 코인 이야기가 나와서 한참을 침을 튀기며 이야기할때 젊은 놈이 열심히 적금 들어서 집 살 생각은 안하고 일확천금만 노린다고 한바탕 훈계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며칠후에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놈이 다시 코인으로 대박난 썰을 늘어놓았다. 그 놈의 자랑질을 두시간이나 들어주고, 2차로 간 껍데기 집에서 열심히 소주를 따라주고 껍데기에 계란말이까지 사주면서 코인을 추천 받았던 것이었다. 그 놈의 알려준대로 거래소에 들어가 떠듬 떠듬 코인을 샀다. 비상금을 탈탈 털어 300만원이란 거금으로 코인을 샀다. 거래소에 놔두면 코인을 해킹 당할 수도 있으니 개인 지갑에 옮겨 지갑 비번과 프라이빗 키를 USB에 담아 두라는 친구놈의 충고를 그대로 따랐다.

코인을 사자마자 매일 5%가 올랐다. 어떤 날은 자고 일어나면 10%가 올랐다. 이 코인이 두배가 되면 뭘할까 행복회로를 돌렸다. 그러나 그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갑자기 코인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거래소에 다시 옮겨 팔려고 했지만 어찌해야 하는지 방법도 몰랐다. 친구놈에게 전화해 니때문에 망했다고 한바탕 쌍욕을 퍼부어주고 어찌 어찌 물어보고 검색해서 다시 거래소로 옮겨 팔려고 했지만 서버가 마비되어 접속도 안되고 입출금도 막혀 버렸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사이 반토막이 났다. 정말 울고 싶었다. 하지만 김차장은 이왕 망한거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바이오 테마주식으로도 몇 번 말아먹어 봤기 때문에 돈삭제엔 이골이 난터였다. 동창놈에게 술을 거하게 사준걸로 치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친구놈을 불러내 술을 매일 얻어 마시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천만원이 물린 친구놈에게 오히려 내가 술을 사줘야 했다. 망할 놈의 코인! 다시는 코인은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렇게 책상 어딘가에 USB를 던져 놓고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망한줄 알았던 코인이 나도 모르는새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누라의 바람과 이혼이란 험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거의 뉴스도 안보고 매일 술에 찌들어 있던 사이에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던 것이었다. 나에게도 다시 희망이 생기는 것인가? 그때 샀던 코인이 올랐으면 몇 천만원, 몇 억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수십배 수백배 오른 코인들도 있다는데 그때 샀던 코인은 엄청나게 오른거 아닐까?

김차장은 그 USB를 찾기 시작했다. 책상 서랍장과 책장을 샅샅이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사를 오고 나서 USB는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풀지 않은 이삿짐 박스를 모두 뒤집어 엎어 짐을 뒤졌다. 거의 밤을 새며 뒤져도 나오지 않아 거의 포기하던 찰나 멀티탭과 각종 전선을 넣은 비닐 봉지에서 USB를 발견했다. 

이제는 연락을 끊은 친구놈에게 다시 물어보기엔 뭐해서 네이버 검색을 통해 코인을 다시 거래소에 입금하는 방법을 배웠다. 거래소에서는 이제 무슨 신원 인증을 하고 실명 계좌를 연동하라고 했다. 새벽에 해가 뜰때쯤에야 겨우 입금에 성공했다. 



김차장은 핏발이 섰지만 그러나 희망에 들뜬 눈으로 거래소 계좌를 확인해봤다. 그런데 두눈을 씻고 다시 쳐다보았다. 300만원을 주고 샀던 코인이 1백만원도 안되는 돈이 되어 있었다. 이게 뭔가하고 코인 관련 커뮤니티를 한참 검색해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보았다. 전후사정을 알고 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책상을 쾅쾅 두드리며 절규를 했다.

김차장이 샀던 코인은 이오스와 리플이었다. 17년 연말 코인들이 폭등하던 시절 이오스와 리플을 각각 150만원어치씩 샀던 것이었다. 쌍욕을 퍼부으면서 바로 코인들을 팔아 현금화를 하고 치킨을 한 마리 배달시켰다.

그러나 그날은 김차장이 잊고 있었던 공돈을 되찾아 치킨을 사먹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