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오-에덴의 펜트하우스는 지상 500미터 상공에 떠 있다. 회색 먼지로 뒤덮인 아래세상과는 철저히 단절된, 그들만의 무균실이다. 돔 형태의 유리 온실 안에는 멸종된 줄 알았던 장미와 튤립이 제철을 모르고 피어 있었다.
이곳의 주인, 바이오 코어의 류태섭 회장은 붉은 장미의 향을 맡으며 미소 지었다. 그의 귓가에는 끊임없이 낮은 기계음이 맴돌았다.
지잉, 지잉.
아피스(Apis)-V4. 쌀알만 한 크기의 초소형 드론이다. 진짜 꿀벌이 사라진 시대, 식물의 수정을 대신하는 로봇 벌들이다. 류 회장의 화원에는 오천 마리의 아피스가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부지런히 꽃 사이를 오갔다. 그에게 이것은 생태계의 복원이 아닌, 그저 값비싼 인테리어 소품일 뿐이었다.
같은 시각, 저택 맞은편의 낡은 빌딩 옥상.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여자가 스코프 대신 태블릿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드러난 어깨 위로 푸른색 범고래 문신이 네온사인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업계 최고의 청소부, 진이었다.
* 타겟 확인. 류태섭
진은 무심한 손길로 코드를 입력했다. 일주일 전, 그녀는 온실 관리 업체 직원으로 위장해 벌 무리 속에 특수 개체 하나를 심어두었다.
* 1단계. 무력화 개시
엔터키가 눌러졌다. 꽃 주위를 평화롭게 맴돌던 4,999마리의 일반 아피스 드론이 일제히 허공에 멈춰 섰다. 그리고 동시에 고개를 돌려 류 회장을 응시했다.
윙윙거리는 소음이 폭풍전야처럼 온실을 메웠다. 기계적인 평온함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뭐, 뭐야. 벌들이 왜 이래! 경비!
류 회장이 뒷걸음질 쳤지만 늦었다. 검은 강철 구름 떼가 그를 덮쳤다. 수천 마리의 금속 벌들이 류 회장의 얼굴과 팔다리에 달라붙었다. 침을 쏘는 게 아니었다. 엄청난 밀도로 뭉쳐 그의 눈과 코, 입을 물리적으로 틀어막았다.
으읍! 읍! 크허억!
호흡이 차단된 류 회장이 발버둥 쳤지만, 수천 개의 티타늄 날개가 만들어내는 압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산소가 끊긴 뇌가 비명을 질렀고, 이내 그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경련하던 몸이 축 늘어졌다.
* 1분 경과. 기절 확인.
진은 차갑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 2단계. 여왕 진입.
천장 샹들리에 위에 숨죽이고 있던 특수 드론이 날아올랐다. 일반 벌보다 두 배 큰 덩치. 유일한 여왕벌이었다.
여왕은 쓰러진 류 회장의 몸 위를 기어 다니는 일벌들을 헤집고 들어가, 그의 뒷목덜미에 착륙했다. 그곳에는 뇌 신경과 직결되는 경추 바이오 포트가 심어져 있었다.
치익.
여왕의 배에서 가늘고 예리한 데이터 탐침이 빠져나와 포트에 접속했다. 기절 상태인 뇌의 방화벽은 무용지물이었다. 여왕의 몸체가 붉은색으로 점멸하며 데이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생체 정보가 아닌, 뇌 속에 저장된 특정 메모리 섹터였다.
* 추출 완료. 철수.
3분 후, 여왕벌이 작업을 마치고 환풍구 틈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진은 나머지 벌들의 설정을 초기화했다.
류 회장을 질식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수천 마리의 벌들이 거짓말처럼 흩어졌다. 윙윙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다시 온실을 평화롭게 채웠다. 쓰러진 류 회장만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 현장에는 그 어떤 외부 침입의 흔적도 남지 않았다. 완벽한 제압과 탈취였다.
띠링.
옥상에 있던 진의 태블릿에 전송 완료 메시지가 떴다. 그녀는 여왕이 가져온 데이터의 헤더를 열었다. 암호화된 코드 사이로 붉은색 기밀 태그가 선명했다.
[특허 출원명 : 프로젝트 이터널]
내용 : 인간 기억의 100% 디지털 백업 및 타인 육체로의 무손실 전송
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늙고 병든 육체를 버리고, 젊고 건강한 타인의 몸을 빼앗아 영생을 누리겠다는 욕망. 영혼 이사 기술의 설계도였다. 류 회장이 지키려 했던 건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수천 조 원의 가치를 지닌 이 불멸의 열쇠였던 것이다.
그때,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의뢰인 X였다.
X : 물건은 확보했나?
Orca : 확보 완료. 하지만 이건 약속과 다르다. 단순한 산업 스파이 짓이 아니야. 위험수당이 필요해.
X : 잔말 말고 전송해. 네 엄마에 대한 진짜 기록... 찾고 싶지 않나?
진의 호흡이 멈췄다. 이 의뢰인은 진의 과거를, 그녀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인 어머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Orca : ...너 누구야.
X : 궁금하면 계속 일해. 이건 시작일 뿐이니까.
선택지는 없었다. 진은 입술을 깨물며 전송 버튼을 눌렀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이것으로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진은 태블릿을 끄고 차갑게 식어가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어깨의 범고래 문신이 욱신거렸다.
좋아. 그게 지옥 불이라도 기꺼이.
그녀는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제 그녀는 단순한 사냥개가 아니다. 거대한 음모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진실을 쫓는 추적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