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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거

소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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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인데.. 얼마전에 슬로우뉴스에서 허생전 패러디한 글을 읽고 생각나서 블로그에 올려 봄.. ㅋㅋㅋ (SNS나 IT 바닥에서 일하시는 분들만 이해하고 살짝 썩소를 날려줄 수 있는 글임.. ㅋㅋㅋ)





소  생  전

소생전(출처 : http://www.nomad21.com/2004/m04/m04_9912.html)


소생은 달구벌에 살았다. 곧장 팔공산 밑에 닿으면, 고층 주상복합 빌딩 뒤에 오래된 주민센터가 있고, 주민센터를 향하여 철대문이 열렸는데, 오래된 연립 주택은 재개발도 피해 갈 정도였다. 그러나 소생은 댓글링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학원 강사를 해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채용공고를 보지 않으니, 뻘댓글은 해서 무엇합니까?"

소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전략 기획을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소셜 강사라도 못하시나요?"

"소셜 강좌는 강남에 몰려있는데 어떻게 하겠소?"

 

"그럼 컨설팅은 못하시나요?"

"컨설팅은 포트폴리오가 없는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외쳤다.

"밤낮으로 소셜 미디어만 파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요? 취업도 못한다, 소셜 강사도 못한다면, 트위터 알바라도 못해먹나요?"

 

소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소셜 미디어 공부만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획 집 밖으로 나가 서울로 올라갔다.

 

소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PC방에 가서 페이스북에 담벼락에 대고 물었다.

"우리나라 벤처 중에서 누가 제일 부자요?"

 

네이봐를 말해주는 이가 있어서, CEO에게 이메일을 보냈더니 한달만에 응답이 왔다. 제휴 관련 담당자 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다음에 이메일을 보냈더니 CEO가 전 직원들이랑 제주도 본사에 워크샵을 갔다고 답신이 왔다. 안철수 대표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거란 답신이 왔다. 카카오톡 오너가 돈이 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카카오톡에 이메일을 보냈으나 카카오 메세지로 보내라는 답변이 왔다. 소생에게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중고장터에서 최저가 아이폰3 중고 매물을 구입하였으나 벽돌 한 장이 배송되어왔다. 당장 판매자를 찾아가 현피를 뜰려고 했으나 거처를 알 길이 없었다.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하였으나, IP가 중국이고, 통장이 대포통장이라 추적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고시원비도 못내고 서울역 노숙인이 되어 쫓겨날 지경이 되었을 즈음, 저 멀리 미국에 사는 페이스북 친구로부터 쪽지가 왔다. 자기 이모님이 서울에서 종부세깨나 낸다고 하니 한번 찾아가보라는 것이었다. 겨우 겨우 찾아가 박여사님이란 분을 만났다.

 

소생은 박여사를 대하여 길게 읍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보려고 하니, 천억원만 뀌어주시기 바랍니다."

 

박여사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천억원을 내주었다. 소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박여사의 직원들과 가족들이 소생을 보니 장기실업자였다. 등산용 바지는 너덜너덜하고, 바람막이는 때가 자욱했으며, 헝크러진 머리카락에 등산화를 이끌고, 손바닥엔 마우스 굳은살이 배겼다. 소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 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천억원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박여사가 말하는 것이였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삥땅치러 오는 사람은 으레 포트폴리오를 대단히 선전하고, 해외 성공 사례를 줄줄이 읇으면서도 무식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팔로워가 많다고 자랑하면서 인게이지 전략도 설명 못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저 사람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천억원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

 

소생은 천억원을 입수하자, 바로 강남으로 건너갔다. 강남은 대행사, PR사, 인터넷 관련 회사, 다단계 사람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접대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광고언론학과며, PR·디자인 등의 졸업생을 모조리 두 배의 연봉으로 사들였다. 소생이 졸업생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기업이 SNS 운영 대행을 못할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소생을 업신여기던 기업들은 열 배의 값으로 아웃소싱을 맡기게 되었다. 소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억으로 온갖 회사들의 코스트를 좌우했으니,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전산학과를 중심으로 제주도(濟州島)에 건너가서 웹과 앱 개발자들을 죄다 모으면서 말했다.

"몇 해 지나면 스마트폰에 국내용 앱이 씨가 마를 것이다."

 

소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T-스토어가 문을 닫았다.

소생은 KOTRA에 전화를 하여 말을 물었다.

 

"바다 밖에 혹시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할 만한 동네가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출장 순번을 잘못 타 벵가루루에 닿았읍지요. 아마 인도 어딘가 쯤 될 겁니다. 정부가 기초 과학을 장려하고, 시급이 싼 수학과 알고리즘의 천재들이 즐비하며, 사람들은 IT 기업을 보고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소생은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

라고 말하니, KOTRA 직원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동쪽으로 가 그 동네에 이르렀다. 소생은 벵가루루의 대로를 보며 실망하여 말했다.

 

"날씨가 이리 덥고 습기가 차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데이터 센터도 짓지 못하겠구나."

 

"이 동네에 한국인이라곤 그다지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KOTRA 직원의 말이었다.

 

"야근 수당이 있으면 한국인은 절로 모인다네. 돈이 없을까 두렵지, 한국인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엣지랭커 그룹에 수 백의 소셜 미디어 마케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매스 미디어에서 버블붕괴론을 선전하여 씨를 말리려 하였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페이스북 앱 개발자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소생이 제일 큰 대행사의 사장을 찾아가서 CEO를 달래었다.

 

"오십 명이 일억의 프로젝트를 따와서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우린 병이라 매스미디어 대행사에게 다 뜯겨서 한푼도 안남지요."

 

"모두 아내가 있소?"

 

"없소."

 

"강남에 아파트는 있소?"

 

회사원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아내가 있고 강남에 아파트가 있는데 무엇때문에 괴롭게 회사를 다닌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하청구조에서 벗어나고, 결혼하고, 이민을 가서 부유롭게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중소기업회사원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인도의 개발력 덕분에 길이 의식의 요족을 누릴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영어가 후달려 못 할 뿐이지요."

 

소생은 웃으며 말했다.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하면서 어찌 영어를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한 게 있소. 내일 트위터 리스트에 들어와 보오. 리스트에 들어간 계정들이 모두 전 세계 소셜 미디어 마케팅계의 핵심 봇 계정들이니 마음대로 구글 번역기를 돌리시구려."

 

소생이 CEO와 언약하고 내려가자, 빌딩 수위가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회사원들이 점심시간에 트위터 리스트에 가 보았더니, 과연 소생이 삼십만 봇들의 계정을 리스트 업 한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소생 앞에 줄이어 절했다.

 

"오직 님하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이에, 마케터들이 다투어 팔로잉을 했으나, 리밋에 걸려 한 사람이 2천명 이상을 팔로잉 하지 못했다.

 

"너희들, 힘이 한껏 2천명도 일시에 팔로잉도 못 하면서 무슨 한국에서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갑에 들어가려고 해도, 대학원을 못 나왔으니 갈 수가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팔로워 중 쓸만한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들에게 모두 DM을 보내 같이 합류하자고 꼬신 후 쓰던 마케팅 제안서, 앱 기획안을 모두 가져 오너라."

 

소생의 말에 마케터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소생은 몸소 2만명의 1년 봉급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마케터들이 10명씩의 디자이너, 프로그래머들과 같이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비행기에 타서 인도로 들어갔다. 소생이 IT 인재를 몽땅 쓸어 가니 가카는 매우 기뻐했다.

 

그들은 새로운 SNS 플랫폼을 개발하고, 표준 API를 개방하고, 치맥을 사주면서 서드파티 앱 개발을 장려하였다. 모두들 두뇌가 총명하고, 야근을 잘하고 서드파티 앱들이 쏟아져나와 1년만에 일일순방문자가 5억명을 기록하고, 회사 가치가 5천억달러에 육박하였다.

 

3년뒤에 쓸 Business Plan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모두 중국에 가져가서 팔았다. 중국은 검열을 중시하는 국가이다. 그 국가는 한참 구글, 페이스북을 차단했지만 급히 글로벌 SNS 플랫폼을 얻게 되었다.

 

소생이 탄식하면서,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이사회 임원 30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인도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따로 플랫폼을 개발하고 소셜 그래프를 새로 제정하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빅데이터 분석 능력이 부족하고 시맨텍 검색 알고리즘이 아직 없으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한국에선 갑이 되게하고, 절대로 을만은 되지 못하게 하여라."

 

다른이들의 여권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

하고 돈 5천억달러를 안철수 재단에 주며,

 

"자선사업엔 쓸모가 있겠지. 5천억달러는 삼숑도 우습다 치거늘, 하물며 이런 뱅가루루에서랴!!"

 

했다. 그리고 토목과 금융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비행기에 태우면서,

 

"이 동네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했다.

 

소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돈이 5조원이 남았다.

"이건 박여사에게 갚을 것이다."

 

소생이 가서 박여사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박여사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천억원을 실패 보지 않았소?"

 

소생이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거뉘 말이오.. 천억원이 어찌 인성을 살찌게 하겠소?"

하고, 5조원을 박여사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소셜 미디어 공부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천억원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박여사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소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저축은행으로 보는가?"

하고는 더 뉴 아이패드를 던져주고 가 버렸다.

 

박여사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소생이 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서 다 쓰러져가는 연립주택으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늙은 아저씨가 어린이회관 앞에서 과외 전단지를 붙이는 것을 보고 박여사가 말을 걸었다.

 

"저 주택이 누구의 집이오?"

"소생원 집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댓글링만 좋아하더니,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처가 혼자 사는데, 집을 나간 밤으로 이혼절차를 밟았지요."

박여사는 비로소 그의 성이 소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박여사는 받은 돈을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소생은 받지 않고 거절하였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5천억 달러를 버리고 5조원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소주나 떨어지지 않고 컴퓨터 업그레이드나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박여사는 소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박여사는 그 때부터 소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 주었다.

소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반값쿠폰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번개를 쳐서 지인들과 곱창을 즐겼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박여사가 5 년 동안에 어떻게 5천억달러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소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조선이라는 나라는 소셜 미디어가 무시를 당하고, 토목을 중시하여 인재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무릇 천억은 작은 돈이라 대기업 하나도 인수를 못하지만, 그것으로 먹고 살기 힘든 관련학과 졸업생을 독점하여, 아웃소싱을 해주면 그만이지요. 얼핏보면 빠져나간 인재는 다른 사람으로 메꿀 수 있을 수 있을것 같고, 대행은 알바질이라고 천박하게 불리지만, 그 때문에 관련학과 졸업생을 모두 독점해버리면, 인재들이 한 곳에 묶여있는 동안에 모든 기업의 기술이 외국에게 역전당하게 될 것입니다. 후세에 누군가 또 이 방법을 쓴다면 그 때는 나라가 망할 것이요."

 

"처음에 내가 선뜻 천억원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소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천억원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천억원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똑똑한 펀드매니져라,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천억원 빌린 다음에는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박여사가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싸이월드가 공개 API을 내놓으며 페이스북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어 보자고 하니,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인재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우선 심모군은 청년 창업을 하여 지상파 방송에 특방되었지만 현재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을 하고 있고, 김모봇 같은 분은 마케팅계를 뒤흔들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지방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의 집정자들은 가히 알 만한 것들이지요. 나는 사업를 잘 하는 사람이라, 내가 번 돈이 족히 성삼주식의 51%를 를 살 만하였으되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이나라의 이공계는 이미 막장이기 때문이었지요."

 

- 너무 길어서 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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