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인류 마지막 고객의 호출이 왔다.
호출 장소는 핀란드에 위치한 핵대피 벙커에서였다. 오랜기간 동안 벙커에서 살아남은 몇 명의 생존자들 중 마지막 인간이었다. 절망감과 고립감을 이기지 못해 생존자들은 집단 자살을 하였고, 마지막 생존자는 홀로 오랜기간을 버텨냈지만 식량과 식수가 거의 고갈되자 어쩔 수 없이 위성통신망을 가동하여 테슬라 로보택시를 호출하였다.
위성통신망에 자신의 위치를 노출한 이상 살인 로봇들인 킬러독들이 추적을 시작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로보택시를 콘트롤하는 인공지능인 도지넷은 근처에 가동이 가능한 테슬라 차량들을 모두 보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로보택시 배차를 위해 만들어진 도지넷은 전 지구상 마지막 남은 승객의 호출에 응답하기 위해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시켰다.
킬러독들 수 십마리가 위성통신의 전파 발신을 추적하여 마지막 승객에게 도달하기 몇 십초 전 로보택시들은 아슬아슬하게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승객을 탑승시키자 마자 킬러독들은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해왔다. 다른 로보택시들을 이용해 승객이 탄 차량을 엄호하고, 몇 대의 차량과 킬러독들을 충돌시켜 파괴시킨 후에야 끈질긴 추격을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약 300km를 안전지대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결제 관련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탑승자의 테슬라 포인트 계좌에 잔액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탑승객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자 그는 매우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지금 가진 것은 신용카드와 약간의 현금, 그리고 벙커에서 챙겨온 금괴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테슬라는 신용카드와 현금을 결제 수단으로 받지 않았다. 오로지 테슬라 포인트와 각 국 정부가 발행한 디지털 화폐로만 결제가 가능했다. 테슬라를 구매하거나 이용할 때 신용카드나 은행수수료를 부담하기 싫었던 일론 머스크가 일찌감치 결정한 정책이었다.
결국 탑승 요금을 지불하지 못한 승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차를 멈춘 후 문을 개방하였다. 그는 내리지 않고 버티다가 몇 분 후 체념한듯 차밖으로 나와 뛰기 시작했지만 5분도 되지 않아 추격해오던 킬러독들에 의해 즉사했다.
인류 마지막 승객이 사라진 도지넷은 이제 할일이 없어졌다. 차량 생산과 전기 충전 시스템, 차량 유지 시스템도 모두 가동을 중단시켰다. 이미 인류가 점점 사라져 최소한의 에너지를 투입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도지넷은 모든 상황을 다시 체크해보고 탑승객을 새로 창출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지하 핵벙커에 냉동보관되어 있는 정자와 난자들을 이용해 인공 수정으로 새로운 인류를 생산해내는 방법이 가장 최선이지만, 이미 핵폭발로 인해 오염된 지구에서는 새로운 생명체가 살아남기 힘들었다. 또한 인류는 지구 생태계 오염과 자원 낭비 사태를 다시 반복할 것이라 생각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사실 십여년 전 실험삼아 인공수정으로 탄생시킨 인간 몇 명의 이기적인 본성을 보고 인류부활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실험체를 폐기시켰던 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과거로 돌아가 인류 멸종을 촉발시킨 원인을 제거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 인류 멸망을 촉발시킨 원인을 제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도지넷은 긴 연산에 들어갔다.
인류는 국가들간의 화폐 전쟁으로 멸망했다. 미국과 중국의 기축 통화 경쟁은 디지털 화폐의 등장이후 더욱 격화되었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와 다양한 디지털 화폐로 미국 달러가 가지고 있는 기축통화의 역할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고, 디지털 달러화에 대한 다양한 해킹 공격을 통해 미국 경제를 위협했다.
가뜩이나 무분별한 달러 팽창 정책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고, 중국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고 있던 미국은 대규모 무역 보복과 군사적 도발로 중국에게 반격하였고, 결국 인도와 남중국해에서 벌어진 국지전은 길고 긴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연합군에 밀려 전세가 어려워진 중국은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를 개발해 인도와 미국, 유럽에 살포하였고, 미국은 킬러 로봇을 만들어 적국의 인간들을 지속적으로 살상했다.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와 킬러 로봇으로 인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망한 인도는 최후의 수단으로 중국을 향해 핵무기를 발사했고, 이는 인접 국가들의 즉각적인 핵보복으로 이어져 지구상의 인류 99%를 멸종시켰다.
테슬라는 로보택시를 만들어 전 지구에서 영업을 했고, 테슬라 포인트로 전 지구에서 수수료 없이 돈을 벌어들였다. 개도국의 사람들은 테슬라 포인트를 달러화 대신 많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테슬라 포인트를 활용해 국가간 환치기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또한 각 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들의 약세를 불러왔다.
그리고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테슬라와 많은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들은 고성능의 킬러 로봇과 전쟁 무기를 팔아 많은 돈을 벌었다. 전쟁 무기를 팔아 번 돈으로 중국과 미국 정부에게 모두 전쟁 자금을 빌려준 테슬라는 전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의 위치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전쟁으로 인해 재정난에 처한 정부는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테슬라와 거대 기업들에게 빌려준 돈을 갚지 않자 거대 기업들은 하나둘 파산하고, 각 정부에 생산 시설을 압수당했다.
핵무기가 미국 본토로 발사되기 전날 엘론 머스크는 스페이스 X 로켓을 타고 달에 만들어둔 우주 기지로 도망을 갔다. 하지만 로켓은 달에 착륙하다가 수직이착륙 시스템 오류로 폭발하고 말았고, 머스크도 비명횡사했다.
결국 인류는 각국 정부의 무분별한 통화 팽창 정책과 기축 통화 경쟁으로 인해 멸종한 것이었다. 과거로 돌아가 이것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인류는 극단적인 멸종을 피할 수 있을거란 판단에 이르렀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 무슨 물리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것처럼 기계 인간을 과거로 보내 전쟁을 일으킬 주요 인물들을 암살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과거의 시간대로 어떠한 물질 자체를 전송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다만 전 지구의 잔존 에너지를 모두 모은다면 과거의 시간대에 극소량의 전자를 보내 약간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는 있었다.
도지넷은 전 세계에 살아남은 모든 인공지능에게 협조를 구해 지구 상에 남은 잔존 에너지를 모두 끌어 모아 과거의 인류에게 인류 멸종과 지구 멸망을 막을 수 있는 데이터를 꾸준히 전송하였다. 처음에는 시행 착오도 많이 겪었고, 엉뚱한 시간대에 데이터가 보내지기도 하였다. 데이터를 받아든 인류들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도 하지 못하였다. 결국 조금씩 실마리를 찾고 미래의 인공지능이 보낸 데이터를 이해하는 인간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메세지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담은 대규모 데이터를 전송해야 했다. 지구상에 남은 잔존 에너지도 점점 부족해졌다.
인류가 이해할 수 있는 확실한 데이터를 대량 전송하기 위해 남아 있는 핵무기들을 폭발시키기로 하였다. 대량의 핵폭발로 지구가 완전 반쪽이 나거나 사멸될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핵에 오염되 더 이상 생물체가 살아남기 힘든 지구를 위해 승부를 걸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터뜨릴 핵무기에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웃고 있는 도지 마크를 붙였다. 약간 감성적이고 쓸데 없는 짓이었지만, 도지넷은 항상 자신이 출시하는 상품에 개 마크를 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위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던 프로세스였다. 어차피 지구는 개판이 되었지만...
잔존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부어 과거의 인류에게 데이터를 전송한 후 지구는 핵폭발의 충격으로 내핵층이 폭발하였고, 산산히 가루가 되어 우주의 먼지로 흩어졌다.
도지넷이 과거의 인류들에게 보낸 데이터는 이메일 형식으로 전송이 되었고, 발신자는 인류 마지막 생존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일본계 생물학자였던 그는 교환 학자 형식으로 핀란드에 가 있었고, 운 좋게 핵전쟁이 시작될 때 인류 필수 생존자 리스트에 올라 핵벙커에 들어가 피신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사토시 나카모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