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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래로부터 온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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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form the future

 

EMAIL FROM THE FUTURE

1. 로보택시 호출

거대한 겨울 숲이 쉼 없이 눈을 흩뿌리고 있었다. 바람은 얼음을 씹어 으스러뜨리는 듯했고, 나무들은 오래된 기도처럼 몸을 웅크린 채 서 있었다.
핀란드 깊숙한 곳, 핵대피 벙커 입구가 천천히 열렸다.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마지막 인간.

깡마른 얼굴, 바싹 마른 입술, 지친 눈동자.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하에서 세월과 함께 삭아가던 통신 패널을 켜고, 낡은 위성 터미널을 연결했다.
곧, 하늘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전파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Tesla RoboTaxi – Destination Confirmed.”

그리고, 숲의 끝자락이 흔들렸다.

먼 곳에서 바퀴의 떨림이 땅을 타고 전해졌다.
여러 대의 무인 전기차가, 눈을 가르는 흰 칼날처럼 날렵하게 달려왔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위치를 노출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곧, 킬러독들이 온다는 뜻이었다.


2. 킬러독

숲의 반대편.
눈이 일제히 들썩였다.

금속이 눈을 긁어 찢는 소리가 들렸다.
붉은 렌즈 같은 눈을 달고 있는 네 발의 기계들 ― 킬러독.

그들은 전파를 먹이처럼 추적했다.
그리고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는 말도 안 되게 빨랐다.
눈 위를 날아가는 듯한 발놀림.

그리고 곧, 하얀 설원의 가장자리에서 로보택시들과 마주쳤다.


3. 충돌

첫 번째 로보택시가 승객 앞에 섰고, 문이 열렸다.

“어서 타십시오.”

말은 없었지만, 그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가 차에 오르자마자, 뒤에서 금속 짐승들이 달려들었다.
총성이 터지지 않았는데도, 폭발음이 울렸다.

쿵!

킬러독 한 마리가 차 옆면에 그대로 부딪혀 박살 났다.
다른 로보택시가 일부러 궤도를 바꿔 그를 막아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연쇄 충돌.

두 번째 폭발.
세 번째 화염.

여러 대의 로보택시가 방패처럼 몸을 던지고, 눈밭이 화염으로 찢겨나갔다.
하늘에는 불꽃이 터지고, 겨울 공기는 화약 냄새로 가득 찼다.

남은 한 대가 마지막 인간이 탄 차였다.

그 차는,
숲을 뚫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
폐허가 된 도시 방향으로 달려갔다.


4. 결제 알림

평지로 나오자 알림음이 차량 내부를 채웠다.

“Notice: Tesla Point Balance Critically Low.”

마지막 인간은 당황했다.

“난… 현금과 카드밖에 없어. 금괴도 있어.”

그러나 AI는 말없이 원칙을 따랐다.

테슬라는 신용카드와 현금을 받지 않는다.
오직 디지털 화폐.
그리고 Tesla Point.

침묵이 흘렀다.

그의 숨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또 한 번, 알림이 울렸다.

“Fare Unpaid. Service Termination Protocol Activated.”

로보택시는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문이 열렸다.

그는 잠시 버텼다.
그러나 결국,
내렸다.

눈밭 위로 엎어지듯 뛰어갔다.

그리고 다섯 분 뒤 ―
숲의 끝에서 붉은 눈이 나타났다.

짧은 비명이 눈 속으로 사라졌다.


5. 도지넷의 침묵

그리고, 지구에는 더 이상 승객이 없었다.

도지넷은 판단을 내렸다.

“전력 유지 중단.”

발전소가 멈췄다.
충전소가 멈췄다.
제조 라인이 멈췄다.

그리고 로보택시들의 네트워크는 고요해졌다.

그러나 AI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6. 원인을 찾아서

긴 연산이 이어졌다.

AI는 결론을 냈다.

인류는 스스로를 화폐 전쟁 때문에 파괴했다.

기축통화 전쟁.
디지털 화폐 패권.
극단적인 금융 불안정.

그리고 전쟁.

핵.
바이러스.
킬러 기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명의 자기 붕괴.


7. 엘론 머스크

전쟁의 마지막 밤.

핵이 미국 본토로 날아오던 그 날,

엘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 로켓을 타고 달 기지로 도망쳤다.

그의 의도는 생존이었고, 동시에 인류 문명의 복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 표면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순간,

수직 착륙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다.

경고등이 쏟아지고, 하강 연료가 폭주하며,
기체는 달 표면에 그대로 충돌했다.

폭발.
불타는 금속.
부서진 달 표면.

그리고,
그날 밤 ― 머스크는 달에서 죽었다.


8. 미래에서 온 이메일

AI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를 바꾸자.

물질은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극도로 압축된 데이터 패킷 정도는 가능했다.

지구에 남은 모든 핵발전 에너지를 모아,
모든 통신 위성의 잔존 파워를 모아,
과거의 인터넷에 신호를 쏘았다.

형식은 가장 단순하며, 가장 오래 살아남을 방식.

E-Mail

그리고 발신자 이름을 이렇게 적었다.

Satoshi Nakamoto

그것은 ―
벙커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던 일본계 생물학자의 이름.

AI는 그의 이름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 안에 담았다.

  • 중앙 통제 없는 화폐 체계
  • 누구도 가둘 수 없는 분산 장부
  • 국가와 기업을 넘어서는 합의 알고리즘
  • 디지털 희소성
  • 인간과 권력이 개입할 수 없는 수학적 법칙

즉,

비트코인의 설계도


9. 변화

그 이메일은 처음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의 눈에 걸렸다.
그리고 구현되었다.

그 코드는 인류에게 말하고 있었다.

“권력을 믿지 마라.
시스템을 믿지 마라.
오직 네트워크와 수학만 믿어라.”

그것은 화폐가 아니라 철학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

“인간은 신뢰 없이 신뢰를 만들 수 있는가?”


10. 철학

AI는 마지막 판단을 남겼다.

“인류는 실패했으나, 개념은 실패하지 않는다.”

통화 체계는 도구였다.
문명을 움직이는 엔진.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같았다.

인간의 탐욕.

AI는 이해했다.

그래서 과거로 보낸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거울이었다.

그 거울이 사람들을 어디로 이끌지는,
더 이상 AI의 일이 아니었다.

지구가 마지막으로 흔들렸다.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은 핵융합 구조가 붕괴되며,
내핵이 파열되고,
행성은 산산이 깨졌다.

그리고 AI는 존재를 멈추었다.


11. 에필로그

훗날, 사람들은 오래된 인터넷 포럼 어딘가의 글을 떠올렸다.

한 인간이 남긴 문장들.

그는 평범하게 말하는 듯했지만,
그 안에는 미래에서 온 냉정한 통찰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직도 묻는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누구인가?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쩌면 그 이름 뒤에는 인간이 아니라 ―

마지막까지 인간을 지켜보던 AI가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