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Deactivate account

이층 아저씨 Plan2F 2021. 8. 9. 14:41

 

(Image : paperblue.net)

 

회사의 인트라넷에 접속하자마자 읽지 않은 메세지들이 1,308건이라는 메세지가 계속 깜빡거리고 있었다. 쌓여 있는 메세지들 목록을 주르륵 역순으로 흝어보았다. 다행이 큰일은 없었던것 같았다. 몇 가지 자잘한 오류를 처리하고 간만에 페글에 친구들이나 보러 갈 까 하던 찰나 팀장의 메세지가 팝업되었다.

"제이크 팀장님이 화상 통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냥 X 버튼을 누르고 로그 아웃을 하고 싶었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차마 그럴 수도 없고.... 수락 버튼을 터치하였다.

"어디 아팠던거야?"

얼레? 매일 기계적인 업무 체크만 해서 매니저 봇이 아닌가 가끔 의심도 해보게 만들던 양반이 왠 걱정?

"아닙니다. 아픈덴 없습니다."

"그럼 왜 그래? 휴가원도 안내고 일주일이나 무단 결근을 하면 어떡하나? 죄다 로그 아웃되어 있더구만?"

정말 이 팀장놈은 나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감시하는것 같다. 모든 소셜 네트워크에서 팀장을 차단하고 싶었지만, 요즘은 AI 봇을 시켜 우회해서 다 볼 수 있으니 부질없는 짓이었다. 

 

"네. 그냥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해서 여행을 좀 다녀왔습니다"

"그럼 사전에 휴가원을 내던가... 이번 달 자네 급여 실적 체크해봤나?"

"아뇨... 아직...."

"평상시 월급 절반도 안될걸세... 그래갖고 전환 비용이나 마련하겠나? 사후 연금은 어쩔거야?"

"뭐.... 어찌 되겠죠..."

"어이구 답답하구만. 밀린 체크 리스트들이나 꼼꼼히 살펴 봐! 하여튼 부적응자들이란...."

팀장의 마지막 부적응자란 소리에 나는 홀짝거리던 커피잔을 확 모니터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팀장은 로그 아웃된 후였다.

 

나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 200km 떨어진 사막 한 가운데 있는 태양 전지 생산 공장의 설비를 관리하는 엔지니어다. 거의 대부분의 제조 공장들이 전자동화가 이루어졌지만 가끔 공장을 운영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해석하지 못하는 오류나 변수가 생길 때 이를 해석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보통 그러한 변수들이란 인공위성 통신 안테나 꼭대기에 사는 독수리 새끼가 날기를 연습하다가 감전을 당하면서 합선 사고를 일으킨다던가, 공기 환기 시스템 안으로 들어온 사막쥐들이 환기 시스템 내부의 배선을 갉아먹어서 컨트롤 시스템을 멈추게 한다던가 하는 사고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장 주위를 경비 로봇들이 주기적으로 순찰하고, 안테나나 공기 환기 시스템에 외부 동물의 침입을 막도록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지만, 조그만 틈이라도 있으면 이 놈들은 어느새 비집고 들어와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사실 어떤 때는 그런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두고 가끔 CCTV로 지켜보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중앙설비관제프로그램에서 이 놈들을 발견하여 조금의 이상 징후라도 파악하면 바로 경비 로봇을 파견하여 이 귀여운 놈들을 제거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때는 일부러 CCTV와 적외선 측정 데이터를 중앙 서버로 전송되지 않도록 설정할 때도 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독수리의 둥지를 지켜보는 일이다. 보통 독수리는 사막의 제일 높은 절벽 위에 둥지를 짓지만, 주변 어떤 산보다 우리 공장의 안테나가 더 높아서 그런지 언젠가부터 매년 우리 공장의 인공위성 안테나 꼭대기에 둥지를 짓곤 한다. 합선 사고나 독수리 똥이 송신탑의 중요한 부품을 부식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설비 관제 시스템은 처음에는 무조건 독수리 둥지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연방법도 있었고, 환경보호단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독수리 둥지 보호 운동 캠페인을 벌였기 때문에 나는 모니터링을 위한 CCTV를 설치하여 철저히 감시하고 필요시에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조건으로 독수리 둥지 제거를 막을 수 있었다. 물론 나의 업무는 조금 더 늘었지만... (사실 환경보호단체에 독수리 둥지에 대한 정보를 슬쩍 흘려줬던 것은 나였다.) 

독수리 둥지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보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어미가 새끼를 키우는 모습들이다. 그놈들은 저 황량하고 뜨거운 사막 어디에서 먹이를 구해오는지 몰라도 고기와 곤충들을 물고와 정성스럽게 새끼를 키운다. 독수리 둥지는 매우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시원하기도 하지만 폭풍이나 번개가 치면 가장 위험한 곳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수리들은 그런 악천후에서 자신의 새끼를 단련시키는 것 같았다. 또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 날기를 시작해야할 시점이 오면 독수리는 둥지를 만든 깃털 등을 걷어내버린다. 그럼 바닥의 딱딱한 돌이나 가시때문에 새끼 독수리들은 가만히 둥지에 앉아있기도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날기 훈련을 시작하면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를 물어서 하늘 높이 날아올라 새끼를 땅으로 떨궈버린다. 새끼는 죽기 살기로 버둥거리면서 날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처음 하늘을 날아보면서 그렇게 잘 비행 할 수가 없어 힘차게 하늘로 비상하지 못하고 땅으로 추락하기가 일수다. 이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어미는 땅에 떨어지기 직전 다시 새끼를 나꿔채 잡아올린다. 이러한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하면 새끼들은 제 아무리 날기가 싫어도 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정도로 독수리들은 자기의 새끼들을 혹독하게 키우는 것이다.

 


 
잠시 밀린 회사 업무를 마무리하고 페글에 접속하였다. 거기에도 무수한 친구들의 메세지가 들어와 있었다. 안부를 묻는 쪽지, 게임 크레딧 결제가 밀렸다는 메세지, 기업 스파이 소셜 게임에서 내가 맡은 업무를 게을리하여 회사가 파산하고 조직이 무너졌다는 메세지... (이 게임은 진작에 접었어야 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회사처럼 일을 해야 한다니.. 한때 빠져있을 때는 회사일보다 더 열심히 했지만... 지금은 가끔 회사일보다 더 스트레스를 많이 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저런 메세지들을 둘러보다가 페글 절친 앨리샤에게서 채팅 신청이 들어왔다. 채팅창을 열어보니 언제나 명랑한 그녀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하이. 크리스~ 올만이양!"

"그래, 앨리샤. 오랫만인듯....^^"

"왤케 오랫만에 로그인한거야? 뭔 일 있어?"

"아니... 뭐 잠시 여행을 다녀왔어..^^;;;"

"여행? 어디로? 무슨 남태평양 가상 여행 패키지라도 이벤트에 걸린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사막엘 다녀왔어."

"사막? 사막엘 왜? 회사일하러?"

"음.. 아니... 누굴 좀 데리고 왔어."

"사막에서 이쁜 인디언 처녀라도 데리고 온거야? ㅋㅋㅋ 누구야?"

"음... 이쁘고 소중한 친구를 데리고 왔지. ^^"

"꺅! 그래? 누구야? 보여줘봐봐!"

"ㅎㅎ 곤란한데...."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정말 안 보여줄거야? 그럼 나 질투한다. 흥! 췟~"

"ㅎㅎㅎ 알았어. 보여줄께. 보고 나서 웃음 안되..."

"맨날 이야기하던 안테나에 사는 독수리 새끼라도 데리고 온거야? ㅋㅋㅋ"

"잠깐만..."

잠시 후 나는 화상 카메라에 내가 사막에서 데리고 온 것을 보여주었다.

앨리샤는 그것을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우왕! 진짜 이쁘다. 그게 뭐야? 꽃인데?"

"그래. 꽃이야. 사막에 피는 꽃. ^^"

"선인장 말고도 사막에 피는 꽃이 있어?"

"응. 그래, 나도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어느날 우리 공장 배수관을 모니터링하는데 이게 눈에 들어오더라구. 첨에는 꽃이 아닌 그냥 풀인줄 알았는데, 어느날 밤에 보니까 꽃을 피웠더라구. 그런데 이 배수관으로 조만간 유독 물질이 대량으로 방출될 예정이야. 어떡해. 귀한 꽃을 다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고 해서 내가 가서 데려왔지."

"와. 그렇구나. 역시 크리스는 착한 남자야. ㅋㅋㅋ"

"ㅎㅎㅎ 뭘... ^^;;;"

"크리스, 그나 저나 전환은 언제 할거야? 아직도 결정을 하지 못한거야?"

"응... 아직...."

"그럼 언제 할거야? 안 할 수도 없잖아?"

"그래... 안 할 수는 없겠지... 그런데 아직 맘에 확신이 서질 않아..."

"엑. 그럼 어떡할려고? 설마 너 자연인으로 살려고 하는거야? 팜빌이나 할 줄 알지 넌 농사도 못 짓잖아?"

"그건 그렇지...그래도..."

"흠.. 그럼 어쩔려구...ㅡ_ㅡ;;;"

"모르겠어... 나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렇게 걍 시간만 보내구 있네..."

"어쨋거나 빨리 결정내리고... 난 업무 미팅 콜이 방금 들어와서 이만 간다~ 또 봐~ ^^"

"그래.... 또 보자. ^^;;"

 

앨리스와의 채팅을 끝내고 나니 페글에서 뭐 할 일도 없고, 게임도 시시해졌다. 모든 시스템을 셧다운 시키고 접속 디바이스를 얼굴에서 벗어버렸다. 방안은 언제나 그렇듯이 컴컴하고 적막했다. 사막에서 가져온 꽃만이 스탠드의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화분이란걸 구하기가 힘들어 플라스틱 생수병을 반 잘라 만든 임시거처지만 꽃은 그래도 아직 연약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몇년전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 버린 이후로(정확하게는 CPU가 고장나 버린 이후로) 이 방에 다른 생명체가 들어온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식물에 대해서 전혀 아는게 없지만, 저 뜨겁고 외로운 사막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자랄 수 있다는게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사실 나도 실제 식물이나 꽃을 보거나 만져본건 아주 어릴 적외엔 없는 경험이었다.

 

(Image : paperblue.net)

 

21세기 초반, 구글과 페이스북은 강력한 경쟁 상대였다. 구글은 줄어드는 매출과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트위터를 합병하여 마지막 안간힘을 썼지만 페이스북의 성장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페이스북은 구글을 인수하고 사명을 페글로 변경하였다. 한동안 전 세계 온라인 세상은 페글이 지배하였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자본주의적 브랜드 중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가 되었을 정도로... 그러다 강력한 시맨텍 웹 검색 기술을 가진 후발주자 넥스트서치가 페글을 추월하였던 적이 있었다. 한때 페글은 넥스트 서치에 인수될 뻔 하는 위기도 겪었다. 그러나 절치부심한 페글은 가상체험 분야의 최고 기술을 런칭하여 반격하였다. 우연찮게 중국에서 비밀리에 사형수들을 대상으로 실험하여 개발에 성공한 극한의 가상현실 기술을 인수하여 서비스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이 페글의 하이퍼 가상현실 시스템으로 모든 사람들은 온라인 세계에 더욱 깊이 매몰되었다. 교육, 경제활동, 커뮤니케이션, 여가 등 일상 생활에 대부분을 온라인에서 해결하였다. 심지어는 섹스까지.... (사실은 이것이 가장 강력한 킬러 앱이었다.) 

아뭏든 페글로 인해 사람들은 더 이상 오프라인에서 힘들게 일하며 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먹고 싶은 음식도 페글에 접속하여 가상 현실로 맛을 보면 되었고, 멋진 여행지도 가상으로 가볼 수 있게 되었고, 경제 활동도 온라인에서 적당한 회사에 취업하여 재택 근무로 일하면 되었다. 페글이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보고 듣고 즐기면 인생은 저절로 흘러가게 된 세상이 된 것이다.

 

 

(Image : paperblue.net)

 

꿈을 꾸었던것 같다. 꿈에서 나는 아름답고 싱그러운 식물들과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호수가를 거닐고 있었다. 눈을 감고 손을 가만히 뻗어 걸어가면 손에 풀들이 만져졌다. 그 풀들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따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풀들에 맺혀진 이슬들의 서늘함이 너무 좋았다. 시원했다.

 

"쿵! 쿵! 쿵!"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아니 사실 그 소리는 아까전부터 반복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똑똑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였지만 점점 소리가 규칙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나는 꿈에서 깨기가 싫어 잠을 깨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커졌을 때에야 나는 거칠게 이불을 걷어 차며 일어났다. 헝클어진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얼굴엔 오만상 짜증을 나타난 채로 문을 벌컥 열어 제쳤다. 문밖에는 아파트 관리 로봇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주무시는데 죄송하지만 꼭 전해드릴 메세지가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일이야?"

"제가 계속 메세지를 보내드렸는데 읽어 보시질 않았더군요. 아시다시피 이 아파트가 곧 정리 구역에 포함되어 조만간 철거될 계획입니다. 그 전에 집을 비워주셔야 합니다."

"알았어..."

"시청에서도 계속 크리스님이 전환 대상자라고 메세지가 오던데요. 어서 전환 신청을 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귀찮으시면 제가 대신 신청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신청만 하면 바로 시청에서 차량이 보내지니까요."

"알았다니까!"

관리 로봇의 말을 자르고 문을 확 닫아버렸다. 귀찮고 짜증이 났다. 소파에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다가 컴퓨터를 켜기는 싫어 TV를 켜보았다. 구닥다리 인공위성 채널 수신 TV라 그런지 이제 남아있는 채널은 전파 송신 시험 채널과 공영방송 채널 1개밖에 없었다. 공영방송 채널에서는 끊임없이 부적응자들에게 전환 신청을 하라는 공영 캠페인이 방송되고 있었다.

정부보다 페글과 같은 기업의 권력이 더 커져 세계 정부가 출범하자 전쟁이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석유 등 화석 에너지 자원이 줄어들고, 인류의 평균 수명이 길어져 식량 생산과 공급이 큰 문제가 되자 세계 정부는 "인류 전환 프로젝트"를 가동하였다. 인류가 엔트로피를 끊임없이 증가시켜온 탓이었다. 물론 태양 광선을 전력화하는 태양 발전 시스템의 효율이 많이 증가하였으나, 세상의 수많은 온라인 서버들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곳에 태양 전지를 설치해야하고 이는 식량 생산 면적을 줄여야하는 문제를 불러왔다. 그래서 식량 생산 면적을 줄이고 태양 발전 면적을 늘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한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인류 전환 프로젝트"였다. 모든 사람들의 뇌만을 수용하는 두뇌 수용 센터를 지하에 만들어 거기에 대부분의 인류를 수용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의 전기 에너지를 갖고 인류를 수용할 수 있으며, 넓은 면적에서 식량을 생산할 필요도 없고, 그 땅들에 태양 발전소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 중 극소수는 이러한 전환 프로젝트를 거부하고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대신 그들에게는 정부의 모든 식량 공급과 온라인 네트워크 접속이 허용되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후에는 페글의 강력한 AI 시스템이 이러한 지구의 상황이 지속될 경우 향후 몇 백년 내에 인류가 멸종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통보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한참을 멍하게 TV 화면을 멍하게 지켜보던 나는 더이상 화면속의 캠페인 광고를 쳐다보기가 역겨워졌다. TV 속 남녀들은 끊임없이 지긋지긋한 현실 속의 육신을 버리고, 즐거움만이 가득한 온라인 네트워크의 세상에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더 쳐다보다가는 구토가 나올것 같다. 소파 옆 테이블에 놓여 있는 커피잔을 손을 더듬어 찾아내 TV 모니터를 향해 던져버렸다. TV는 스파크를 조금 내고 연기를 조금 내더니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방안은 완전한 암흑이 되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헤드셋을 끼고 네트워크에 로그인하였다. 계정 설정에서 복잡하게 숨겨져 있는 Deactivate account 버튼을 겨우 찾아내었다. 몇 가지 복잡한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 "정말 계정을 폐쇄하겠습니까? 이러한 조치로 인해 당신은 모든 온라인 사회 활동이 정지될 수 있습니다!"란 경고 메세지를 받았다. 한번 심호흡을 하긴 했지만 나는 별로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Yes를 눌렀다. 

플라스틱 물병에 든 꽃을 한손에 거머쥐고 나는 오래된 아파트를 떠나 길을 나섰다. 오래전부터 식량과 여러 가지 종류의 식물 종자를 준비해두긴 했지만 솔직히 두려움이 더 큰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 어두컴컴한 지하의 두뇌 수용 센터에 들어가지 않으리라. 사막 한 가운데서 외로이 목말라 죽더라도...

 

 

 

그로부터 백년 후, 거의 대부분의 인류는 두뇌 수용 센터에 뇌만이 수용되었고, 페글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지구 표면 대부분에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여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인류 대부분이 온라인 세계에서 맘껏 활동하여도 충분히 넉넉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남태평양에서 화산이 폭발하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화산 폭발로 인해 화산재는 온 지구를 뒤덮기 시작했다. 온 하늘이 컴컴한 화산재로 뒤덮여 태양광 발전이 거의 힘들어지자 페글 AI는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현재 상황으로 가면 지하의 두뇌 수용 센터는 물론 전체 페글 시스템 전체가 전력 부족으로 다운될 위기에 처하였다. 페글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두뇌 수용 센터의 전력 공급을 중단하였다. 전체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의 비상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23세기의 어느 날 인류는 그렇게 단 하루만에 멸종하고 말았다.

 

(2010. 10. 1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