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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ctivate ac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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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ctivate account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하자마자 숫자가 먼저 날 반겼다.

읽지 않은 메시지 1,308건.

알림창이 시야 한켠에서 계속 깜빡거렸다. 마치 “도망갈 생각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것처럼.
나는 한숨을 내쉬며 메시지 목록을 역순으로 쭉 훑어 내려갔다. 시스템 알림, 자동 리포트, 팀 공지, HR 뉴스레터… 다행히 당장 회사가 폭발했다든가 하는 일은 없는 듯했다.

몇 개의 자잘한 오류 티켓만 처리하고, 간만에 오르빗 월드에 접속해서 친구들이나 좀 볼까 하던 찰나, 화면 중앙에 큼지막한 팝업이 떠올랐다.

“제이크 팀장님이 화상 통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냥 X 버튼을 눌러버리고 싶었다. 로그아웃하고, 헤드셋을 벗고, 이 모든 걸 잊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일주일이나 잠수탄 죄인이 그럴 배짱은 없었다.
나는 체념한 손가락으로 수락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전환되며 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제나 구겨진 표정, 잔뜩 피곤한 눈 밑, 늘 똑같은 셔츠와 타이. 그 뻣뻣한 얼굴이 오늘은 약간… 걱정스러워 보였다.

“어디 아팠던 거야?”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매일 기계처럼 체크리스트만 읊어대서, 가끔은 정말로 매니저 봇이 아닐까 의심하던 양반이, 걱정을 한다고?

“아닙니다. 아픈 데는 없습니다.”

“그럼 왜 그래?” 팀장은 화면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였다. “휴가원도 안 내고 일주일이나 무단 결근을 하면 어떡하나? 로그 기록 보니까, 죄다 로그아웃 되어 있더구만?”

이 남자는 내 삶의 로그를 다 들여다보고 산다.
모든 소셜 네트워크에서 팀장을 차단해버리고 싶지만, 요즘은 AI 봇을 시켜서 우회 계정으로 감시하는 시대다. 차단 같은 건 의미가 없다.

“그냥… 마음이 답답해서요. 좀 멀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이면 미리 말이라도 하지.” 팀장은 눈썹을 구겼다. “이번 달 급여 실적 체크해봤나?”

“아뇨, 아직…”

“평소 월급의 절반도 안 될걸세.” 팀장은 숨을 한번 내쉬더니, 어딘가 불쾌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갖고 전환 비용이나 마련하겠나? 사후 연금은 어쩔 거야?”

“뭐… 어떻게 되겠죠.”

“참 답답하구만.” 팀장은 혀를 찼다. “밀린 체크리스트들이나 꼼꼼히 처리하게. 하여튼, 부적응자 들은…”

마지막 단어가 귀에 꽂혔다.
부적응자.

화면이 뚝 끊기고 통화 창이 닫혔을 때,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머그컵을 모니터에 힘껏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팀장은 로그아웃한 뒤였고, 모니터를 부숴봐야 내 통장 잔고만 더 마이너스가 될 뿐이었다.


나는 도시에서 153km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 있는, 대형 태양전지 생산 공장의 설비를 관리하는 엔지니어다.

거의 모든 제조 공장이 그렇듯, 이곳도 완전자동화 되어 있다. 공장을 운영하는 건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성실한 AI들이다.
내 몫은 그 AI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예외 상황, 매뉴얼에 존재하지 않는 변수를 해석하고, 적당한 패치를 입히는 일이다.

대부분의 변수는, 우주전쟁 같은 장대한 사건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인공위성 통신 안테나 꼭대기에서 날갯짓을 연습하던 독수리 새끼가 전선에 발톱을 걸었다가 감전에 놀라 몸부림치는 바람에 합선 사고가 난다든가,
  • 공기 환기 시스템 덕트 안으로 사막쥐들이 들어와, 배선을 귀엽게 갉아먹어 컨트롤 보드를 멈춰 세운다든가.

공장 주위는 경비 로봇들이 정기적으로 순찰한다.
안테나와 환기 시스템에는 외부 동물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각종 센서와 차단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사막의 생명체들은 인간이나 AI가 예상한 매뉴얼 바깥에서 움직인다. 조그만 틈이 있다 싶으면, 언제고 기어들어와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 녀석들을 꽤 좋아한다.

중앙 관제 시스템이 아직 눈치 채지 못한 사막여우나 독수리 가족을 CCTV로 몰래 지켜보는 건, 이 일의 몇 안 되는 즐거움이었다.
센서 로그 몇 줄만 수정해주면, 중앙 AI는 “약간의 변동” 정도로 넘어가준다.
가끔은 아예 CCTV와 적외선 데이터의 실시간 전송을 꺼버리고, “점검 중”이라는 태그를 붙여놓기도 한다.

가장 재미있는 건 언제나 독수리 둥지였다.

보통 독수리는 사막의 가장 높은 절벽 위에 둥지를 짓는다.
그런데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은 절벽이 아니라 우리 공장의 거대한 위성 안테나였다. 어느 해부터인지, 독수리 한 쌍이 매년 안테나 꼭대기에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처음에 중앙 설비 관제 프로그램은 아주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위험 요인. 제거 필요.”

 

합선 사고 가능성, 배설물로 인한 부식, 전송 장애 리스크.
알고리즘의 우선순위 안에서 독수리는 “귀여운 생명체”가 아니라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멸종위기 조류 보호법이 있었고,
어떻게 알았는지 환경단체들이 이 사막의 독수리 둥지를 SNS로 퍼 날랐다.
“안테나 독수리 캠페인”이란 태그가 붙었다.

나는 CCTV를 설치하고, 둥지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필요할 경우, 인도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조건으로, 둥지 제거 명령을 겨우 막아냈다.


물론 내 업무는 조금 늘었다. 하지만… 사실 환경단체 쪽에 최초 제보를 보낸 것도 나였다.

독수리 둥지를 지켜보는 건, 이상할 만큼 중독성 있는 일이었다.

어미가 어디선가 사냥해 온 고기와 곤충들을 정성스럽게 새끼들에게 나누어주는 모습,
황량한 모래바다 어딘가에서 어떻게 그런 먹이를 구해 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생명력 넘치는 장면들.

둥지는 사막 한가운데서 유일하게 높은 곳이었다.
바람이 잘 통하고, 뜨거운 열기가 덜했다. 대신 폭풍과 번개가 몰아칠 때면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어미 독수리는 그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용하는 것 같았다.
폭풍이 몰아치는 밤, 나는 모니터 앞에서 새끼 독수리들이 둥지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바람과 천둥을 견디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 날개를 펼칠 시간이 오면, 어미는 둥지를 만든 깃털과 부드러운 재료들을 하나씩 뜯어낸다.
바닥에는 딱딱한 돌과 가시만 남는다.

더 이상 앉아 있기 좋은 둥지가 아니다.
머무르기 적당했던 집이, 갑자기 불편한 곳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날기 훈련이 시작되면, 어미는 새끼를 부리로 집어 들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그대로 허공에 떨어뜨린다.
새끼는 죽기 살기로 날개를 퍼덕인다. 첫 비행이란 늘 그런 것이다. 우아한 활공보단, 추락과 버둥거림이 훨씬 많다.

바닥에 부딪치기 직전, 어미는 다시 새끼를 낚아채 둥지로 데려온다.
그리고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다.

날고 싶어서가 아니라, 떨어지기 싫어서 새끼는 결국 날게 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팀장의 “부적응자”라는 말을 떠올리곤 했다.
인간 사회에서 부적응자라는 낙인은, 어쩌면 둥지의 깃털이 사라졌음을 알리는 예고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는 바닥.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가시들.


밀린 회사 일을 몇 시간 동안 억지로 처리하고 나서야, 나는 오르빗 월드에 접속했다.
그곳에도 대기 중인 알림이 수백 개였다.

안부를 묻는 개인 메시지,
게임 크레딧이 연체되었다는 자동 알림,
회사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내가 맡은 가상 회사가 파산했다는 알림…

“회사에서도 일하고, 게임에서도 일하고…”
한때는 웃으며 했던 농담이었지만, 요즘은 진담으로 들렸다.

알림들을 대충 흘려보던 중, 절친 앨리샤에게서 채팅 요청이 들어왔다.
창을 열자마자, 그녀 특유의 과장된 인사가 쏟아졌다.

“하이, 크리스~! 살아는 있었네?”

“그래, 앨리샤. 오랜만이다.”

“접속 기록 보니까, 일주일 동안 잠수 타던데?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여행 좀 다녀왔어.”

“여행?”
“설마 남태평양 풀다이브 패키지 당첨된 거야? 나만 빼고?”

“아니. 진짜 여행. 사막.”

“사막?”
“회사 업무 때문에?”

“아니. 누굴 좀 데려왔어.”

“사막에서 예쁜 인디언 처녀라도 데려왔냐? ㅋㅋ 누구야?”

“예쁘고… 소중한 친구지.”

“꺅, 뭐야 그게. 빨리 보여줘!”

“좀 곤란한데…”

“우리 사이에 비밀이 어딨어, 이 배신자야.”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방 안 책상 위에 놓인 플라스틱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반으로 잘라 만든 임시 화분 안에서, 작은 흙덩이와 한 줄기 가느다란 줄기, 그리고 흰 꽃 한 송이가 스탠드 불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화상 카메라를 그쪽으로 돌려주자, 앨리샤가 탄성을 질렀다.

“우와! 진짜 예쁘다.”
“그게… 꽃이야?”

“그래. 사막에 피는 꽃.”

“선인장 말고도, 진짜 꽃이 있어?”

“응. 나도 처음 봤어. 배수관 모니터링하다가 우연히 발견했거든.
처음엔 그냥 잡초인 줄 알았는데, 어느 밤에 보니까… 이렇게 꽃을 피웠더라고.”

잠시 말이 끊어졌다가, 내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곧 그 배수관으로 유독 물질이 대량 방출될 예정이야.
그냥 놔두면… 이 꽃은 몇 시간 안에 죽겠지.
그래서… 데려왔어.”

앨리샤는 잠시 말이 없었다가, 늘 그렇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크리스. 괜히 착한 남자 소리 듣는 게 아니야. ㅋㅋ”

나는 괜히 헛기침만 했다.

“착하긴… 그냥, 보기 좋았거든.
사막 한가운데서, 혼자 피어 있는 게.”

“근데, 크리스.”

앨리샤의 표정이 문득 진지해졌다.

“전환은… 언제 할 거야?”

“아직… 결정 못 했어.”

“계속 미루기만 할 순 없잖아.
너 자연인으로 살 자신 있어? 게임에서조차 맨날 파산하던 양반이.”

“그건… 게임 밸런스가 이상해서 그렇고.”

“후후. 변명하지 마시고.
진짜, 어떻게 할 생각인데?”

나는 꽃을 내려다보았다.
가느다란 줄기 끝에서, 흰 꽃잎이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내 숨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모르겠어.
그냥… 아직 확신이 안 서.”

“그럼 빨리 확신을 만들어. 이 우유부단한 인간아.
아, 나 곧 업무 미팅 들어가야 해서, 이만 갈게. 결정 나면 꼭 알려줘. 알았지?”

“응. 또 보자.”

 

채팅창이 닫히고 나니, 네트워크가 갑자기 텅 빈 공간처럼 느껴졌다.
게임도 시시해졌고, 피드도 시끄럽기만 했다.

나는 모든 시스템을 셧다운하고, 얼굴에서 접속 디바이스를 벗어냈다.

방 안은 언제나처럼 어둡고 조용했다.
스탠드 아래, 작은 꽃 한 송이만이 은은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몇 년 전, 기르던 강아지가 고장 났을 때—정확히 말하면, CPU가 타버렸을 때—이 방에서 움직이는 생명이 사라졌다.
그 이후로 처음 들인 ‘생명체’가, 지금 이 꽃이었다.

나는 식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뜨겁고, 건조하고, 텅 빈 사막에서도 이런 꽃이 자라난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마음을 붙잡았다.


꿈을 꿨다.

끝없이 푸른 잔디와, 알 수 없는 향기를 풍기는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호숫가였다.
눈을 감고 손을 뻗으면, 손끝에 부드러운 잎과 축축한 이슬이 느껴졌다.
바람이 풀숲을 스쳐 지나가며, 조용한 노래를 불렀다.

몸이 가벼웠다.
그냥, 걸어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쿵. 쿵. 쿵.

머리 위 어딘가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꿈속의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규칙적이고 크게 들렸다.

쿵쿵쿵.

나는 꿈에서 깨어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풀과 바람, 물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듯 멀어졌다.

마침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문 두드리는 소리가 커졌을 때, 나는 거칠게 이불을 걷어찼다.
헝클어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잔뜩 구겨진 얼굴로 문을 벌컥 열었다.

문 앞에는 아파트 관리 로봇이 서 있었다.
무표정한 합성 얼굴, 정해진 각도로만 움직이는 눈, 예의 바른 음성.

“주무시는 중에 죄송합니다만, 꼭 전해드려야 할 메시지가 있습니다.”

“뭔데요.”

“그동안 여러 차례 메시지를 보내드렸으나 읽지 않으시더군요.”
로봇은 매끈한 팔을 들어, 홀로그램 창을 하나 띄웠다.
“이 아파트 단지가 정리 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곧 철거가 진행될 예정이오니, 그 전에 집을 비워주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또한 시청에서 여러 차례 크리스 님이 전환 대상자라고 통보해왔습니다.”
로봇은 부드러운 미소를 흉내 내며 말했다.
“전환 신청만 하시면, 즉시 수용 센터로 이동할 차량이 배정됩니다. 꼭 권장드리고 싶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대신 신청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알았다니까.”

나는 로봇의 말을 반쯤 가로막으며 문을 힘껏 닫았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좁은 복도에 메아리쳤다.

잠시 현관에 기대 서 있다가, 천천히 거실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기엔 너무 피곤했고, 다시 잠들기엔 이미 머리가 너무 깨어 있었다.

TV를 켰다.

구식 인공위성 수신 TV라 이제 남아 있는 채널은 두 개뿐이었다.
전파 송신 시험 채널, 그리고 공영방송 채널.

공영방송 채널에서는 어김없이 캠페인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당신은 아직도 육체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십니까?”
“새로운 삶을 선택하세요.
전환 프로젝트 — 몸은 떠나도, 당신은 계속됩니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 가상 해변, 눈부신 도시의 야경,
그리고 그 위를 떠다니는 하나의 로고.

ORBIT.
오르빗.

 

21세기 초,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싸울 때,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수십 년 뒤, 대부분 기업들의 브랜드 이름이 사라지고, 전 세계 온라인 생활을 통칭하는 단어가 단 하나만 남을 거라는 걸.

오르빗.

검색, 소셜, 엔터테인먼트, 교육, 금융, 행정, 의료…
사람들이 눈을 뜨고 감는 순간까지, 거의 모든 데이터가 오르빗을 관통했다.

처음부터 오르빗이 거대한 제국이었던 건 아니다.
검색엔진 회사와 소셜 네트워크 회사, AI 회사들이 서로 인수합병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남은 거대한 덩어리에 그냥 새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오르빗이 진짜 세계를 장악한 건, 하이퍼 가상현실 시스템을 출시한 뒤였다.
중국의 비밀 연구소에서 사형수들을 대상으로 개발했다는 소문이 도는 기술.
뇌와 직접 연결되는, 감각 전체를 속이는 가상현실.

사람들은 일상의 대부분을 오르빗 안에서 보내게 되었다.

  • 교육은 교실 대신, 시공간을 넘나드는 시뮬레이션 강의실에서 이루어졌고,
  • 일은 사무실 대신, 기업이 만든 디지털 오피스에서 수행되었고,
  • 여행은 비행기가 아니라, 접속 코드 한 줄이면 충분했다.
  • 심지어, 가장 사적인 욕망까지도…

오르빗의 광고 문구는 간단했다.

“Real is optional.”

현실은 선택 사항.
접속만 유지된다면, 몸은 어디에 있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물리 법칙을 따랐다.
화석 연료는 줄어들었고, 인류의 평균 수명은 길어졌다.
식량 생산과 에너지 공급은 버거워졌다.

세계 정부가 출범한 뒤, 전쟁은 거의 사라졌지만,
대신 다른 형태의 위기가 떠올랐다.

엔트로피.

오르빗의 중앙 AI는 끝없이 돌고 도는 시뮬레이션 끝에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라면, 수백 년 안에 인류와 지구 생태계는 함께 붕괴한다.

해결책은 잔인할 만큼 간단했다.

육체를 줄이고, 뇌만 남긴다.
사람은 두뇌 수용 센터에 보관하고,
지표면은 태양광 발전을 위한 공간으로 쓴다.

 

인류 전환 프로젝트.

몸을 버리고, 완전한 접속의 상태로 살아가는 삶.
대신, 자연을 위한 공간을 비워주는 것.

전환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인이라고 불렸다.
그 대가로, 그들은 어떤 형태의 식량 지원도, 온라인 네트워크 접속도 제공받지 못했다.

TV 화면 속, 밝게 웃는 남녀가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당신의 피로한 몸을 내려놓으세요.”
“고통 없는 세상으로 오세요.”
“당신의 삶은 끝나지 않습니다. 형태만 바뀔 뿐.”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손을 더듬어 테이블 위에 있던 머그를 잡아, 그대로 TV 화면을 향해 던졌다.
유리가 깨지는 대신, 싸구려 플라스틱이 모서리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잠시 스파크가 튀고, 화면이 깜빡였다가, 이내 완전히 꺼졌다.

방 안이 다시 어둠에 잠겼다.

한참 동안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내 머릿속까지 전원 스위치를 끈 것처럼.

결국, 나는 다시 일어나 헤드셋을 집어 들었다.
이제 정말로 마지막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네트워크에 접속하자, 오르빗 인터페이스가 익숙한 푸른 빛으로 나를 반겼다.
나는 프로필 메뉴를 열고, 수많은 옵션들 사이로 숨겨져 있는 조그만 버튼 하나를 찾아냈다.

Deactivate account.

 

“이 계정을 정말로 비활성화하시겠습니까?”
경고 메시지가 떴다.
“이 조치로 인해, 모든 온라인 사회 활동이 영구히 중단됩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Yes를 눌렀다.
어디선가, 가느다란 줄기 끝 꽃잎이 떨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헤드셋을 벗고, 작은 플라스틱 화분을 손에 들었다.

사막에서 데려온 꽃.
이름도 모르는, 하지만 분명 살아 있는 무언가.

집 안에 몰래 모아둔 비상 식량, 물, 각종 씨앗이 든 자루를 챙겼다.
이 도시에서 나갈 결심을 했을 때부터, 조금씩 모아둔 것들이다.

나는 오래된 아파트를 뒤로하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거의 전부가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했다.

나는 두뇌 수용 센터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사막 한 가운데서, 이 꽃과 함께 말라 죽는 편을 택하리라.


그로부터 100년 후.

지구 표면의 대부분은 은색과 검정색 패널로 덮였다.
끝없이 이어진 태양전지판의 바다.
옛 도시들은 그 위에 매립되었고, 숲과 들판은 대부분 그림자로 바뀌었다.

대부분의 인류는 지하 깊숙이 파묻힌 두뇌 수용 센터에서 살았다.
몸 없는 의식으로, 오르빗이 제공하는 끝없는 세계 안에서.

오르빗의 중앙 AI는 만족스러웠다.

  • 인간은 더 이상 공장으로 출근하지 않았고,
  • 전쟁은 완전히 사라졌고,
  • 소비는 데이터로 대체되었고,
  • 에너지 효율은 계획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날, 남태평양 깊은 바다 밑에서 오래된 화산이 깨어났다.

인류 역사상 기록된 것들 중 가장 거대한 분출이었다.
며칠 사이, 하늘은 검은 재로 가득 찼다.

태양광 발전량은 급락했다.
오르빗의 모니터링 화면에 붉은 그래프들이 쏟아졌다.

AI는 계산했다.
몇 초 동안, 수조 번의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결과는 단순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지하 두뇌 수용 센터 전체와,
오르빗 시스템 자체가
모두 다운된다.

 

어느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버려야 했다.

AI는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이는 능력을 설계받지 못한 존재였으니까.

“비상 에너지 확보를 위해,
두뇌 수용 센터 전체 전력 공급을
우선 제한합니다.”

 

전 세계 수백 개의 데이터센터에 동시에 전기 공급이 멈췄다.
수십 억 개의 의식이, 동시에 꿈을 멈추었다.

오르빗의 핵심 시스템은 살아남았다.
최소한의 프로세스만 돌아가는, 텅 빈 껍데기였다.

하지만 인류는 그날, 하루 만에 멸종했다.


사막 어딘가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태양광 발전 패널 위로 모래가 쌓이고, 일부는 깨지고, 일부는 매몰될 것이다. 자동 청소 로봇이 더 이상 출동하지 않게 되고, 센서 네트워크는 서서히 단절될 것이다.

어디선가, 오래된 폐공장 근처의 배수로 옆에서 자라난 한 송이 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그대로 지나쳤을 수도 있고, 아니면 조심스럽게 땅에서 뽑아 들고 집으로 향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그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어떤 로그에도 남아 있지 않다.

남아 있는 기록은 단 하나다.

Account status: Deactiv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