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일의 L은 유난히 불쾌한 기분으로 깨어났다.
주 4일제가 정착된 뒤로 금요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그리고 그에게도—가장 길고 달콤한 하루였다. 알람도 없이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3일짜리 주말을 설계하는 날. 원래라면 그래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머릿속이 형체 없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무겁고, 기억도 어딘가가 비어 있었다.
‘…어제 뭐 했더라?’
L은 하얗게 공백이 생긴 시간대를 어떻게든 붙잡아보려 했지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 동기화를 담당하는 수면 캡슐이 오작동하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세계에서 숙취란 존재하지 않는다.
요일별 복제 신체가 돌아가며 일상을 수행하고, 밤마다 뇌파 동기화를 통해 기억이 합쳐진다.
따라서 몸은 달라도 ‘그’는 단 하나의 연속된 의식을 유지한다.
그게 원리였다.
그런데 목요일 하루가, 송두리째 사라져 있었다.
L은 즉시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인공지능이 던져주는 여행·쇼핑 추천 메일들 속에서, 목요일에 도착했어야 할 중요한 업무 메일들이 줄줄이 ‘Unread’ 표시로 남아 있었다.
목요일의 L이 아예 일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수면실로 내려간 L은 캡슐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금요일.
그리고… 목요일 캡슐이 비어 있었다.
“설마 탈출?”
말이 되지 않았다.
복제 신체는 지정된 생활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L은 그제야 손끝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가장 신뢰하는 동료 K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잠에서 덜 깬 얼굴로 K가 화면에 나타났다.
“아… L? 무슨 일이야. 금요일 아침부터?”
“혹시 어제 나… 뭔가 이상하지 않았나?”
“이상하긴 했지. 너, 회식 끝나고 혼자 더 마신다며 칵테일바로 갔잖아. 그 뒤론 못 봤지.”
“그 이후 기억이 없어.”
K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줄 알았다. 네 목요일 버전, 요즘 계속 상태 안 좋았잖아. 스트레스 수치도 높았다며?”
“그래도… 사라질 정도는 아니잖아.”
“그래. 그건 아니지.”
둘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 사이, L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혹시 죽은 건 아닐까?”
K가 말을 잇지 못했다.
저녁이 되자 L은 회사 근처 칵테일바로 향했다.
마담은 그를 보자마자 반색했다.
“아—어제 많이 취하셨죠? 의자에서 계속 졸아서 택시 불러 드렸어요.”
“혹시 지갑 같은 거… 두고 간 건 없나요?”
“아뇨. 그냥 조용히 타고 가셨어요.”
마담의 말투에는 분명히 ‘아무 이상 없었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귀가 경로를 따라가던 L은 제15 한강교 위에서 멈춰 섰다.
길가 난간 옆.
누가 가지런히 벗어둔 듯한 검은 구두 한 켤레.
그리고… 그것은 분명,
목요일의 L이 출근할 때 신던 구두였다.
한강물은 초저녁의 그림자를 삼킨 채, 깊고 무겁게 흐르고 있었다.
L은 구두를 안고 돌아왔다.
그날 밤, 그는 잠들지 못했다.
잠들지 못하면, 동기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직감했다.
이제부터 목요일의 역할도 자신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연구소
“또 같은 패턴입니다. 목요일 개체의 장기 스트레스 수치가 임계점을 넘고, 이후 자발적 이탈 혹은 자해 성향이 발생했습니다.”
연구소장은 안경 너머로 데이터를 훑어보다가 연구원을 쳐다 보았다.
“대책은?”
“…근본 원인은 시스템 설계입니다. 기억 동기화가 ‘감정까지 포함한 완전 복제’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그대로 누적됩니다. 신체는 갈아 끼워도 정신은 누적되는 셈이죠.”
소장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목요일 개체가 항상 무너진다는 거군.”
“네. 주중 업무 강도가 가장 높은 날이니까요. 저장된 스트레스는 삭제할 수 없고, 분산도 불가능합니다. 단지 다른 요일로 흘러갈 뿐입니다.”
“기억을 부분적으로 차단하면?”
“그러면 동일성 유지가 깨집니다. 자아가 분열되죠.”
실험 대상 이름 옆에 적혀 있던 코드가 보였다.
Subject L — Status: 진행 중
연구원은 그제야 깨달았다.
문제가 된 목요일의 L은 시스템 오류가 아니라, 설계된 구조의 필연이라는 걸.
다시, L
그는 더 이상 실험 대상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목요일의 남자가 사라진 이후,
금요일의 그는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건…
계속해서 무언가를 견디고 있다는 뜻이구나.’
그는 이제 매주 두 번 깨어날 것이다.
그 중 하루는, 가장 긴 하루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늘, 목요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파일 로그
SUBJECT L — 복제·기억 동기화 실험 147회차
재현된 현상:
· 목요일 개체의 지속적 자살 충동
· 스트레스 누적에 따른 감정 오류
· 자기보존 본능의 역전
권고:
- 감정 메모리의 부분적 비동기화 적용
- 스트레스 인자 분산 알고리즘 재설계
- 실험 대상 보호를 위한 휴식 일수 추가
부기 메모 — 조교 개인 기록:
“인간은 여전히 하나의 연속된 존재로 살도록 진화했다.
자아를 조각내는 순간,
먼저 금이 가는 것은 ‘가장 약한 요일’이다.”